티처빌매거진 Vol. 19 <Class KnowHOW>
한글날 계기교육 중·고등편
영화보다 재미있는 한글 이야기, 듣다 보면 귀에 ‘쏙’
글. 황지은 인천 세원고등학교 선생님
한글은 세계문자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받고 유네스코에서도 인정한 세계 제일의 문자다. 하지만 한글의 역사와 우수성을 되돌아보는 교육은 보편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한글날을 맞이해서라도 한글의 역사와 우수성을 알아가는 교육이 필요하다.
일회성 교육이어서도 안 된다. 초등부터 고등까지 꾸준히 이어져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중·고등학생 대상으로 할 수 있는 한글날 계기교육을 소개한다.
전국에서 단 28명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국어영역에 100점을 받은 학생의 숫자입니다. 역대 가장 어려웠던 수능으로 기록됐습니다. 너무도 어려웠던 시험 탓에 국어 교과를 더 어렵고 멀게 느끼는 아이들이 점점 늘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큽니다. 보통 누구나 쉽게 읽고, 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국어 교과를 처음에는 어려운 과목으로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국어의 벽’을 느끼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여러 국어 세부 영역 중 가장 낯설고 어렵게 느끼는 부분이 바로 ‘국어의 역사’입니다. 학부 때 중세국어문법론을 들으며 ‘이렇게 따분하고 어려운 내용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치지?’라는 걱정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국어 교과의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국어의 역사에 대해 배우 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교과서에도 아이들이 흥미를 갖고 국어의 역사를 이해하고 우리 한글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내용으로 잘 구성이 돼 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오면서 내용 자체도 어려워지고, 수능에서 다루는 국어 역사 부분이 어렵게 등장하면서 점점 멀게만 느끼게 됩니다.
2022학년도 수능 국어영역의 ‘언어와 매체’ [35~36] 지문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전공자들에게도 쉽지 않은 내용은 우리 아이들에게 한글의 자긍심을 느낄 여유조차 없이 두려운 대상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입시 중심의 교육이 이뤄지는 현실에서 우리 국어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제대로 된 국어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넘쳐나는 언어 정보 속에서 정확히, 그리고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자기 생각을 오해 없이 전달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합니다. 국어의 역사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정확한 국어 생활을 위해 그 뿌리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어 환경 역시 급변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고 지켜가려는 노력은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 한글에 대한 사랑과 긍지를 높여주기 위해 한글날을 전후해 아이들과 함께했던 수업을 소개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훈민정음』 해례본 이야기
2학년 학생과 함께한 첫 번째 수업은 이야기를 전해주듯이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했습니다. 한글이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 간략히 소개해주고 『훈민정음』의 설명서인 ‘언해본’과 ‘해례본’의 차이에 대해 알려줬습니다. 한글의 창제 취지와 원칙을 담아 많은 책에 수록된 언해본과 달리 제자 원리를 세밀하게 담고 있는 해례본은 간행 자체가 많이 되지 않았음을 쉽게 이해했습니다.
해례본이 전승되지 않아 우리의 한글이 어떤 원리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알지 못하고 오랜 세월을 보냈다는 사실, 이어서 일제강점기에 핍 박 받았던 한글과 한글의 탄생을 조롱하기 위해 날조했던 일본의 언어학자에 관한 내용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 전해줬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 속에 아이들은 깊이 빠져드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어서 영화같이 극적으로 찾아낸 해례본, 그리고 그 안에 담겨 있던 한글 창제의 비밀에 대한 부분을 설명할 때는 여러 차례 탄성과 박수도 나왔습니다.
문살을 보고 만들었다는 일본의 억측을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원리를 통해 만들었다는 사실을 전해주면서 첫 번째 수업을 마쳤습니다. 다음 시간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려고 해례본과 관련한 놀라운 사실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예고로 알려주자 궁금해 못 참겠다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빼앗긴 한글 되찾기
한글날 맞이 특별수업 두 번째 시간. 수업 시작 전부터 오늘 이어질 이야기 가 궁금하다고 성화였습니다. 수업의 전반부에서는 『훈민정음』 해례의 ‘간 송본’과 ‘상주본’에 대한 이야기를 자료 화면과 함께 풀어나갔습니다. 일본에 빼앗긴 해례를 되돌려 가져온 간송 전형필 선생의 노력, 그리고 국가에 기증한 내용을 우선 소개했습니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소중하게 남아 있는 간송본은 1994년 국보로 지정됐고,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음을 알려주자 아이들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바로 이어서 2008년 또 다른 해례인 상주본이 등장한 사건을 이야기했습니다. 배○○ 씨가 소장하고 있는 상주본은 보존 상태가 좋지 않지만, 각 주에 다른 내용이 별도로 표기돼 있어 역사적 가치가 더 있는 것이라는 평 가를 받고 있다는 설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배○○ 씨가 상주본을 일부만 공개하고, 1,000억 원이 넘는 거액을 요구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힘 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자 아이들은 분개했습니다.
이러한 두 이야기를 해준 다음, 구체적인 실천 노력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에 관한 내용으로 확장해갔습니다. 아이들은 법률적 조치, 캠페인 등의 방법을 제안했고 학생 수준에서 할 수 있는 항의 편지 쓰기 활동을 정 했습니다. 단, 너무 감정에 치우치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당부하고, 해당 시간에 쓰기를 진행했습니다. 시간이 부족해 쓰지 못한 경우에는 과제로 쓰도록 했습니다. 배○○ 씨에게 전달하지는 않았지만, 친구들과 함께 자 쓴 편지의 내용을 나누며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역사 수업과의 변주
한글날 맞이 특별수업 마지막 시간은 역사 선생님과 함께했습니다. 미리 역사 선생님께 부탁을 드려 문자의 역사를 중심으로 한 강의를 저와 주고 받는 식으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4대 문명의 태동과 문자의 관계에 관 해 설명했고, 저는 설형문자와 상형문자의 운용 원리에 대해 알려줬습니다. 어느 한쪽의 내용만 들었을 때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었던 부분을 역 사와 함께 입체적으로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문자와 권력이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내용을 중국과 유럽의 사례를 들어 설명했고,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을 당시 이를 반대했던 양반들의 입장에 관해서도 확인했습니다. 끝으로 세계의 경계가 무너지고 정보와 문화가 넘나드는 오늘날 우리에게 한글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발표를 하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며 마무리를 했습니다.
3시간에 걸친 우리 국어의 역사와 관련한 수업을 진행하며 깊이 몰입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한글의 우수 성을 이해하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다는 아이들의 소감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우리 아이들은 한글의 뿌리를 알고 좀 더 나은 언어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됐다고 믿습니다. 여러분도 다가오는 한글날, 특별한 수업을 준비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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