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처빌매거진 Vol.18 <Teacher Life>
‘엥그림’(Eng-grim)은 제주도교육청 직장인 그림 동호회다. 오는 8월 세 번째 ‘엥그리다’ 전을 앞두고 있을 만큼 규모가 커졌지만, 그 시작은 학교 내 작은 캘리그라피 동호회였다. ‘엥그림’ 회장인 박보영 선생님은 그림 그리는 것도 좋지만, 그림을 통해 마음 맞는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전했다.
그림 여행으로 시작된 그림활동
제주도 서귀포의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아름다운 섬 풍경을 캔버스에 옮기는 교사 박보영입니다. 3년째 교직원 그림 동호회 ‘엥그림’을 운영하며 좋은 사람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그림을 좋아해 배 우기도 했지만 3년 전 함께 그림을 그리고 싶은 좋은 동료들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그림 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엥그림’ 활동을 시작한 계기는 미술대학원에서 만난 마음 맞는 친구와의 그림 여행이었는데요. 작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을 방문하고 호텔이나 기차에서 그날 느낀 영감을 바로 그림에 담곤 했습니다. 프랑스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정원, 고흐가 잠든 오베르 쉬즈 우아르를 다니며 그린 그림을 SNS에 올렸고, 다른 작가들과 소통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그림 활동은 이제 제 삶의 일부가 됐습니다.
1. 라부여관 (10.5x15.5㎝, 종이에 수채, 2019). 2. 비치거리 (10.5x15.5㎝, 종이에 수채, 2019)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그리는 의미
매번 무엇을 그릴지 결정하기 쉽지 않지만 제 삶에서 의미 있고,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주제나 대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그립니다. 그림을 그릴 때는 관찰력과 인내심이 필요해 애정이 없는 대상을 그리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제가 사랑하는 대상을 좋아하는 표현 방법으로 그리곤 합니다. 주로 제주도의 아름다운 숲과 하늘 그리고 계절감이 가득한 풍경에 생각을 담아 그리고 있습니다.
눈으로 끊임없이 바라보고 수없이 많은 붓질로 캔버스에 채우는 작업은 제 나름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주로 사용하는 표현 방법은 수채와 아크릴 기법입니다. 팔레트에 다양한 색의 수채물감이 빼곡하게 채워진 모습과 물을 듬뿍 머금은 색채가 번져나가는 순간은 그린다는 행위와는 별개로 아름다움과 행복감을 줍니다. 아크릴 물감은 수채물감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는데, 강렬하고 선명한 색채감과 입체적인 표현 등을 나타낼 수 있어 최근에 는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3. 레지던스 광장 분수 (10.5x15.5㎝, 종이에 수채, 2019)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주의 숲과 노을을 그려
이렇게 작업한 그림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노을과 숲 연작입니다. 핑크빛으로 물든 제주의 노을은 정말 아름답지만, 찰나인지라 그 짧고 아름다운 순간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또 이 노을을 감상하는 이들에게 편안한 밤, 완전한 휴식처를 제공하고 싶다는 간절함을 그림에 담았습니다. 숲 연작에서는 공통으로 나무 사이로 하늘을 바라보는 구도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해방감과 안정감을 동시에 추구하는 마음을 표현합니다.
자신을 둘러싼 안전한 관계를 울타리처럼 표현한 나무들과 그 안정감을 토대로 시원하고 자유롭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청량한 해방감을 다양한 제주의 하늘로 나타냈습니다. 이러한 작품들 외에도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반려견도 그리며 무엇이든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것들을 그림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영감을 주는 제주의 자연과 주변의 사랑스러운 대상에 늘 감사하며 그림을 그립니다.
좋은 동료와 함께 만들어온 '엥그림'
교사 생활을 하며 작품 활동을 꾸준히 지속하는 것은 마음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제가 붓을 계속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같이 그림을 그리고 전 시를 약속한 ‘엥그림’의 좋은 동료와 늘 응원을 아끼지 않는 주변의 선생님들, 또 저의 그림 스승님이 돼준 김소라 작가님과 같은 좋은 분들 덕분입니다. 저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는 제주도교육청 직장인 동호회 ‘엥그림’에는 제주 도의 교사, 영양사, 교육행정직 등 학교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이 모여 있습니다.
제주북초등학교 김영수 도서관의 작은 공간에서 교직원 캘리그라피 동아리로 시작해 이제 학교 밖에서도 그림을 그리는 모임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림 실력보다 마음속의 좋아하는 일을 꺼내 함께 말하고 실천하는 것이 저희 모임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가 아니라 “그림을 그리자!” ‘전시하면 좋겠다’가 아니라 “전시를 하자!” 이런 방향으로 함께하다 보니 짧은 시간에 거침없이 많은 일을 진행했고, 서로 대견해하고 신기해하며 계속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2번의 '엥그리다'전, 8월 3번째 전시 준비 중
‘엥그림’(Eng-grim)은 ‘붓 따위로 이리저리 금을 긋거나 어지럽게 하여 버리다’라는 의미의 제주 방언인 ‘엥그리다’에서 따온 말로 마음껏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엥그리’는 모임을 뜻합니다. 자신의 관심사를 즐기면서 그리고 완성된 작 품을 함께 전시하는 것을 동호회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가끔 전시에 쫓겨 그림을 그릴 때도 있지만 그림에 몰입한 순간의 행복함, 완성된 작품이 온전 히 자신만의 창작물이라는 뿌듯함과 애틋함이 ‘엥그림’ 회원들이 3년째 함께 모여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엥그림’은 두 번의 전시를 통해 제주의 자연 풍경을 따뜻하고 아름다운 시선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작품들과 우리 삶의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되찾고 싶은 일상의 활력, 관계의 소중함 등을 표현하는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또 코로나19가 장기화 함에 따라 잃어버린 일상의 즐거움을 그림으로 해소하고 작품을 감상하는 분 들과 우리 주변의 행복을 나누며 소통하고자 했습니다. 다가오는 8월에는 3 번째 ‘엥그리다’전을 개최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꿈을 그리는 붓질을 하고 싶어
올해는 전담을 맡고 있지만, 지난해에는 2학년 담임을 맡아 귀여운 아이들과 함께했습니다. 틈만 나면 아이들이 “저희 선생님은 그림을 잘 그려요! 화가예요!”라고 선생님 자랑과 소개를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의 자랑스러운 눈빛과 저의 쑥스러워하는 눈빛이 마주치며 웃음을 터뜨리곤 했는데요. 가끔은 무엇을 그려야 할지도 모르겠고, 잘 그리고 싶은 조급한 마음에 제 그림이 형편없어 보일 때도 있지만 아이들에겐 세상에서 그림을 가장 잘 그리는 우리 화가 선생님이기에 꾸준히, 천천히 성장하려는 마음으로 붓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좋아하는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에게 그림의 재미와 하고 싶은 일을 망 설이지 않고 할 수 있게끔 하는 용기를 전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떤 목표를 향해 걸어갈 때 좋은 사람들과 함께 걸어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자 합니다. 지금처럼 저와 아이들이 용기 있게 꿈을 그려나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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